음보(foot, 音步)란 무엇인가?

2020. 8. 27. 20:09언어학 feat poem

#시이론 #음보




음보는 시의 음악성을 구성하는 틀이다.

음악을 작곡할 때 오선지에 그리는 마디와 같은 것이다. 

여기에 박자를 표시하고 음표를 그리면 가락과 리듬이 생긴다.

음보는 말 그대로 시를 읊을 때의 걸음이다.

시조를 한 수 읊으며 걸음을 걸어보라.

4걸음을 걸으면 한 행이 끝나고 다시 4걸음을 걸으면 또 한 행이 끝난다.

그리고 다시 4걸음을 걸으면 종장이 끝나게 된다.

이런 의미에서 음보라 칭하는 것이다.

 

이때 각 걸음에 걸리는 시간은 동일하다.

3음절을 읊으면 걷는 걸음과 4음절을 읊는 걸음, 5음절을 읊는 걸음이 모두 같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.

그러니 한 음보에 적은 수의 음절이 들어 있으면 상대적으로 발음이 길어지거나 발음이 끝나고 약간의 쉼이 있게 된다.

반대로 한 음보에 많은 수의 음절이 들어 있으면 각 발음에 걸리는 시간은 더 빨라야 한다.

 

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예로 들어보자.

 

청산리/ 벽계수야/ 수이감을/ 자랑마라.

일도/ 창해하면/ 돌아오기/ 오려우니

명월이/ 만공산하니/ 쉬어간들/ 어떠리

 

시조는 4음보의 정형을 가지기 때문에 각 행은 모두 4개의 구분을 가진다. 이때 각 음보에 있는 음절 수와 관계없이 각 음보를 읊는 속도는 일정해야 한다. (보통 음수, 자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음은 정확히 음절을 의미하고 글자수는 시란 원래 낭송이나 가창을 전제로 하는 말소리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말소리의 단위 음절을 사용한다.)

 

정형시는 매 행이 모두 같은 수의 음보를 가지며, 이 음보 안에 일정한 패턴의 운(韻)과 율(律)을 넣어야 시의 음악성이 완성되는 것이다.(운률을 구성하는 운과 율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설명하겠다.)

따라서 음보는 정형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몸체라 할 수 있다.

자유시의 경우에도 음보는 꼭 있어야 한다. 이런 의미에서 음보가 없는 시는 없다고 할 수 있다.

다만 자유시의 음보는 시 안에서 특정 음보에 얽매이지 않고 시인이 자유롭게 음보를 구성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.

 

음보는 일정하지만 특정한 운이나 율이 존재하지 않는 정형시도 가능하다.

대표적으로 시조가 그러하다. 시조는 3행 4음보의 시로 각 음보는 일정한 음절을 배열함으로써 율을 이루게 된다.

가장 정형적인 음절 배열은 '3,4,3,4/3,4,3,4/3,5,4,3'으로 알려져 있지만 각 음보의 음절이 더 줄거나 늘어도 정형 시조를 만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. 위의 황진이 시조를 보아도 3음절이 와야할 자리에 2음절이나 4음절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없다. 이런 점에서 시조의 정형성은 3행 4음보의 틀 안에서 대체로 3,4조의 음절 범위 안에서 음절 수의 변화를 주어 율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. 각 음보에 들어가는 음절 수의 넘나듦이 있다 하더라도 음보의 첫음절에 강세를 주고 낭송에서 각 음보에 배정한 시간을 일정하다. 

 

하나의 음보를 만드는 방법은 각 언어의 특성에 따라 발달시켜 온 정형시에 따라 다르다.

한시는 4언, 5언, 7언의 정형을 가지는데 각각 2음보를 가진다. 5언이나 7언의 경우 중간에 한 번의 끊김이 있기 때문에 음보가 쉽게 구별되지만 4언의 경우는 끊김이 없어서 2음보로 명확히 인식되지는 않는다. 그러나 4언의 경우도 3번째 음절에 강세가 조금 오고 번역하면 대개 2개의 의미 단위로 구분되므로 2음보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. 이렇게 끊김 다음의 두번째 음보의 첫 음절은 시조와 마찬가지로 강세가 오게 된다. 따라서 한시는 2음보의 틀애 4언, 5언, 7언을 엄격하게 지키며 각 음보의 시작에 강세를 주는 방법으로 율을 만드는 정형시라고 할 수 있다.

시경의 4언절구를 살펴보자. ('표시는 끊김이 있는 곳이다.)

관관'저구(關關雎鳩)
재하'지주(在河之洲)
요조'숙녀(窈窕淑女)
군자'호구(君子好逑)
(시경: 관저)

 

4언절구는 4자 4행의 한시를 말한다. 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.

구룩구룩' 물수리
물가에' 있네
아리땁고 정숙한' 아가씨
총각들이' 원하네.
(번역: 고창수)


번역하면 음보는 그대로 둘로 나눌 수 있지만 그 안의 음절은 일정하지 않다.
한자를 번역하면 음절 수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.

그러나 번역을 해도 '표시가 있는 곳을 보면 대략 의미가 둘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.



5언절구는 5자 4행의 시다.

秋風'惟苦吟 (추풍유고음)
世路'少知音 (세로소지음)
窓外'三更雨 (창외삼경우)
燈前'萬里心 (등전만리심)
(최치원: 추풍)

 

5언은 앞 2음절 다음에 잠시 쉼을 가지고 나머지 3음절을 읽음으로써 2음보를 이룬다.

가을바람 부는데' 괴로이 읊는다.
세상에' 알아주는 이 없구나.
창밖은' 깊은 밤 비
등잔 앞' 만리의 마음.
(번역: 고창수)


역시 번역하면 2음보는 지킬 수 있어도 음수율은 깨지게 된다. 그러나 이 번역 역시 각 행의 두 개의 의미 분절을 가진다.

좀 더 멋드러지게 번역할 수 있지만 가능한 직역하여 한문의 의미 분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.

7언절구는 7자 4행의 시다.

 

雨歇長堤'草色多 (우헐장제초색다)
送君南浦'動悲歌 (송군남포동비가)
大同江水'何時盡 (대동강수하시진)
別淚年年'添綠波 (별루년년첨록파)

(정지상:송인)


7언의 경우 앞 4자가 한 음보를 이루고 다음 3자가 한 음보를 이룬다.

번역하면 다음과 같다. 이에 대한 설명은 4언과 5언의 경우와 같다.

 

비 갠 긴 언덕' 풀빛으로 넘치네.

남포로 임 보내는' 슬픈 노래 부르니

대동강물은' 언제 마를꼬.

해마다 이별 눈물' 푸른 물결 더하니.
(번역: 고창수)

 


영시에서 가장 애호되는 음보는 5음보이다.

(사실 영시는 다양한 정형의 틀을 가지지만, 여기서는 약강 5음보시만 예를 들어 보겠다.)
그러니까 5음보 시는 첫행부터 마지막행까지 모두 5음보를 이루어야 한다. 이때 한 음보를 구성하는 것은 음절도 단어도 아닌 각 단어의 강세이다. 대표적인 음보는 약강 강세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iambic이다. 그래서 약강 5음보 시를 iambic pentameter라 한다.

약강 5음보 시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.

 

    ×    / x /    ×     /      ×    /    ×    /

When I do count the clock that tells the time, 

(지나간 시간을 재어본들/ 번역:고창수)

×는 강세가 없는 단어이고 /는 강세가 있는 단어이다.

위 시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2의 첫 행이다.

x와 /가 결합하여 한 음보를 만들고 이 음보가 한 행에 모두 다섯이다.

(소네트는 모두 14행의 시로 각 행은 5음보로 구성되어 있다.)

이런 의미에서 약강 5음보의 시라고 하는 것이다.

영시는 단어의 강세로 음보를 만들기 때문에 약강 5음보 시는 10 단어가 한 행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.

그러나 여기에도 단어의 수에 변이를 줄 수 있고, 약 부분의 단어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.

 

예를 들어 블레이크의 '타이거'라는 시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.

 

Tyger Tyger, burning bright

x / x. / x. /

x Tyger/ x Tyger/, burning bright

(타이거, 타이거, 타오르는 불길/ 번역:고창수)

 

위 시는 약강 3음보 시이므로 6 단어가 한 행에 들어가야 하지만, tyger 앞에 약 단어 대신 쉼을 둠으로써 3음보를 지키고 있다. 이 경우 정형성이 훼손된다기보다는 일종의 의도적 변이라고 보아야 한다. 

 

이런 의미에서 시조가 음절 수를 넘나들어도 정형성이 훼손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변이적 방법을 사용했다고 보아도 무방할  것이다.

 

# 이상 간략하게 음보의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해 보았습니다. 질문 있으시면 댓글 달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'언어학 feat poem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시란 무엇인가?- 이야기로서의 시  (0) 2020.10.17
시란 무엇인가?- 시의 탄생  (0) 2020.09.29
시가 문법을 파괴할 때  (0) 2020.09.17